설날떡국 왜 먹지? 세배예절? 까치설 뭘까?

설날은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합니다.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듭니다. 모여서 정을 나누고 덕담을 나누고 서로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모여서 함께 음식을 먹고 새로운 한 해를 무탈하고 즐겁게 보내기를 빌어줍니다.

설날은 말하자면 정을 나누는 시기요, 한 해의 멋진 출발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있는 설날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맞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설날 기획시리즈 제2탄으로 설날 떡국과 세배예절 , 까치설날 등에 관해 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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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유래는? 어원은?
‘설’은 ‘낯설다’ ‘살’ 혹은 ‘서다’에서 비롯했다고 어원 학자들은 말합니다. 설의 뜻을 ‘시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고도 봅니다. 새해의 시작은 몸과 마음을 조심하고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은 ‘설다. 낯설다’에서 나왔다고도 해석합니다.

설의 뜻을 나이로 말하는 年歲說도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것을 ‘살’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가 한 살 두 살이라고 말하는 나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서다’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해석합니다.

설날 떡국 언제부터 먹었을까
떡국과 관련한 옛 문헌 자료가 많이 남지 않아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조선후기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는 떡국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떡국은 새해 차례와 아침식사 때 없으면 안 될 음식이며, 손님 접대용으로 꼭 내놓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동국세시기는 떡국이 겉모습이 희다고 해서 ‘백탕’(白湯), 혹은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는 뜻에서 ‘병탕’(餠湯)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식의 ‘택당집’은 ‘새해 첫날의 제사상을 차릴 때 병탕과 만두탕을 한 그릇씩 올린다’고 적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 서적에는 떡국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이 조선 중기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떡국의 기원이 중국 당나라 때 먹었던 ‘탕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떡국을 왜 먹을까
떡국을 왜 먹는지는 떡국에 사용하는 긴 가래떡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떡국은 ‘갱생부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설날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자 맑은 물에 흰 떡을 넣어 끓인 떡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가래떡의 흰색은 근엄함과 청결함을 뜻했기 때문에 좋지 않았던 일들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떡국은 ‘무병장수’도 뜻합니다. 긴 가래떡처럼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떡은 끊기지 않고 길게 뽑을수록 좋다고 하여 떡을 뽑을 때 자르지 않고 최대한 길게 뽑는다고 합니다. 떡국은 ‘재물기원’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가래떡의 길이는 집안에 재물이 늘어나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긴 가래떡을 동그란 엽전 모양으로 썰어 엽전이 불어나듯 재산도 불어나길 바랐고, 또 엽전 모양의 떡국을 먹으면서 재물이 풍족해지길 기원했다고 합니다.

설날 세배 어떻게 해야할까
설날 빼놓을 수 없는 게 세배입니다. 세배는 설날 아침, 웃어른께 드리는 예법입니다. 그런데 세배법은 따로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예의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세배법은 남자와 여자가 다릅니다. 세배는 새해를 맞아 어른들께 전하는 문안 인사를 말합니다.

먼저 남자가 웃어른께 세배하는 방법은 왼손을 오른손 위로 올립니다. 그런다음 엎드리며 왼쪽 다리부터 꿇습니다.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가 손등에 닿게 머리를 숙입니다. 앉은 반대 순서로 일어나 왼발 오른발을 가지런히 모읍니다.

다음으로 여자가 세배하는 방법은 오른손을 왼손 위로 올립니다.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을 가지런히 꿇습니다. 상체를 앞으로 굽히며 손바닥을 바닥에 댑니다.

세배 후엔 덕담 기다려야 전통예절
세배 후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같은 말을 하지 말고, 어른의 덕담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통 예절입니다. 세배는 원칙적으로 절하는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절한 후 어른의 덕담이 곧이어 나오지 않거나, 덕담이 있고 난 뒤에 어른께 말로 인사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어른께 하는 인사말은 ‘올해는 여행 많이 다니세요’ 등과 같이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기원을 담은 것이 적절합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오래오래 사세요’ 등과 같이 건강이나 장수를 비는 인사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듣는 이에게 ‘내가 그렇게 늙었나?’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세배할 때 절하겠다는 뜻으로 어른에게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이런 명령조의 말은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절 받는 어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이 차가 많지 않은 어른이 절 받기를 사양할 때는 권하는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왜 어저께일까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윤극영(尹克榮, 1903~1988) 시인의 동요 ‘설날’의 노래 가사입니다. 어릴 때부터 새해가 찾아오면 부르던 낯익은 이 곡을 부르면서 왜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라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보통 설날 전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릅니다. 이로 인해 동요 ‘설날’의 노랫말에도 까치가 등장한 것입니다. 까치설이 등장하게 된 유래는 먼저 고려시대 삼국유사 속 설화와 연관돼 있습니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승려와 내통해 왕을 죽이려고 했으나 왕이 까치와 쥐, 돼지, 용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쥐, 돼지, 용은 모두 십이지에 들어가는 동물이라 그 공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까치는 여기서 제외돼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이 설 전날을 가치의 날로 정해 까치설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까치 설날 유래는 발음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설날을 ‘아치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치’는 ‘작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치의 뜻이 상실되면서 비슷한 ‘까치’로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까치설의 유래는 까치가 길조의 동물로 여긴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반가운 손님이 오면 까치가 운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동요에서 까치의 설날을 어제라고 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설날이 찾아오면 반가운 손님이 모인다는 의미를 문학적인 느낌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또 다른 까치설 유래는 동요 설날이 제작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우리말살 정책에 저항해 작사 작곡된 곡이라는 점입니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음력설을 없애고 양력 1월 1일을 공식적인 양력설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다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공휴일로 삼았습니다. 1989년에는 음력설을 비로소 설로 명명했고 3일간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동요 설날 앞부분에 나오는 ‘까치까치 설날은’에서 설은 일제의 양력설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우리 설날은’은 우리의 음력 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동요는 어둠의 시대에서도 새 날의 희망을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뱃돈 문화 어떻게 유래가 되었을까?
우리나라 세뱃돈 문화는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중국은 춘절에 ‘바이니옌(拜年)’이라는 우리나라 세배 개념의 새해 인사가 있습니다. 송나라 때부터 음력 1월 1일, 혼인하지 않은 자녀에게 ‘홍바오(紅包)’라는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건넸다고 합니다. 악귀와 불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설날이 있을까
설날은 우리민족만의 것일까요. 다른 나라에도 설이 있습니다. 설날 새해 인사인 ‘세배’는 아시아권 특유의 문화로 꼽힙니다. 세배는 아랫사람이 어른이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해를 맞은 것을 기념해 문안드리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이때 서로 덕담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른들은 인사 온 이들에게 돈과 음식을 건네는데, 이를 세뱃돈과 세뱃상이라고 합니다.

일본도 비슷한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국처럼 음력설을 쇠왔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양력설만 지낸다고 합니다. 연말부터 5일까지를 ‘오쇼가츠(お正月)’ 연휴라고 한다고 합니다. 절을 하지는 않으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오토시다마(お年玉)’라는 세뱃돈 개념의 봉투를 준다고 합니다. 과거 떡을 나눠줬던 것을 시작으로 무로마치 시대에는 연이나 하고이타(장난감)를 건넸고, 지금은 ‘오토시다마 부쿠로’란 봉투에 넣어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설날 왜 떡국을 먹을까
설날 대표적인 음식은 바로 떡국입니다. 떡국을 먹어야만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해서 설날이면 반드시 떡국을 먹었습니다. 떡국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설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맑은 물에 정성껏 만든 하얀 떡을 넣어 먹는데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가라떡을 동그랗게 썬 이유는 집안에 재물복을 내려달라는 소원을 담은 행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설날 다른 나라는 어떤 음식을 먹을까
중국은 지방마다 먹는 음식이 다릅니다. 북방에서는 그믐날 저녁 식구들이 함께 모여 빚은 교자를 먹는다고 합니. 여기서 교는 교체를 나타내는 교(交)와 발음이 같아 새해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남방에서는 두부와 생선을 먹는다고 합니다. 두부의 부(腐)와 생선의 어(漁)가 재물이 넉넉하다는 의미의 ‘부유(富裕)’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설에 먹는 요리를 ‘오세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차례상과 비슷해 신에게 공양한 요리를 여러 사람이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일본식 떡국인 ‘오조니’도 있습니다. 고기와 생선, 채소가 든 장국에 찹쌀떡을 넣어 만든다고 합니다.

고대의 설날은 음력 1월1일이 아니었다?
설날은 음력 1월1일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수천년 넘게 이어져 온 민족의 명절로 고정된 날짜로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로 현재 음력 1월1일이 정월이 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이는 시대마다 써왔던 달력이 모두 달랐고, 정월 또한 왕조가 바뀔때마다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날이란 개념이 동양에서 처음 생긴 것은 중국 고대 상고시대 국가로 알려진 ‘하(夏)’나라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도 각 달은 12지에 의거해 나눴었다 알려져 있었는데, 새해의 기준은 매년 해가 가장 짧은 동지였다고 합니다. 당시 1월은 동지가 들어있는 자월(子月)이었는데, 왕조마다 새해 기준점이 되는 정월은 모두 달랐다고 합니다. 하나라는 자월보다 2개월 뒤인 ‘인(寅)’월이 정월이었고, 그다음 왕조인 은나라는 자월 바로 다음달인 ‘축(丑)’월, 그다음 왕조인 주나라부터 자월을 정월로 삼았다고 합니다 상고시대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은 왕조 교체 때마다 달라지면서 지금의 음력 1월과 많이 달랐던 셈입니다.

이후 중국이 사실상 처음 통일된 진나라 때부터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달력이 변하면서 음력 1월1일은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설날 역시 왕조마다 변천을 겪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체로 부여시대부터 오늘날 설날 풍습과 유사한 풍습이 있었으며, 중국에서 수입한 음력을 기준으로 계속 달라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음력 1월1일은 청나라 초기 서양 선교사인 아담 샬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시헌력’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우리나라에는 1653년 도입된 이후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에서도 쓰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