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반전? 추락 전조?…데드크로스 정치학

“죽음 앞에서 겁쟁이는 몇 번이고 죽지만, 용기 있는 자는 한 번 죽을 뿐이다.” 세계적 문호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남긴 말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뭐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사실상 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최근 여론조사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생긴 용어가 생활 속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한가나 하한가가 그렇고 골든 크로스나 데드 크로스는 정치에서 지지율 변화의 극적인 전기를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지지율 상승의 전환점은 골든크로스,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는 전환점은 데드크로스입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그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처럼 인생이라는 사납고 거친 바다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싸웠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여론조사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부정이 긍정보다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를 세간에서는 ‘데드크로스(Dead Cross)’라고 합니다. 대통령 지지도는 곧잘 주식 시장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코스피는 올해 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2,600을 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 지지율도 한때 80%를 웃돌았습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그 추세가 꺾여 코스피는 2,000선으로 추락하고, 대통령 지지율도 슬금슬금 빠지더니 데드크로스가 나타났습니다.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는 것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고비 혹은 전환점을 맞았다는 의미입니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고,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와 민생 일자리 측면에서 당초 기대했던 바와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일종의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현상이 나타나자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조금씩 추락하더니 결국 데드크로스가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지역ㆍ계층ㆍ세대에서 공통적으로 정부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ㆍ민생 지표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인사기강 문란과 추문으로 청와대는 연일 동네북이 된 지 오래 전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자 정부여당을 공격해야 하는 야당은 이를 호재로 삼아 데드크로스 하나로 여권에 타격을 주고 지지층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하면 주가 흐름이 약세시장으로의 전환신호로 해석되지만, 이를 전후해서는 일시적 상승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의 데드크로스는 주식시장과 성질이 다릅니다.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지지율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이후에 전체 흐름을 다시 오르막으로 바꾸는데 성공한 사례는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집권 초반의 지지율에 상당 부분 묻어 있던 정권에 대한 기대치는 쑥 빠져나가고 그동안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국민들은 바로 내가 처한 현실을 따지기 때문입니다. 데드크로스는 주식시장이라면 ‘대통령 주식’은 팔라는 의미입니다.

역대 정권을 돌아보면 취임 초 높았던 지지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지고 부정평가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데드크로스 현상은 주로 임기 중반쯤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한 달,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에 발생했습니다. 물론 데드크로스가 발생해도 다시 골든크로스로 회복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전체적 지지율 흐름을 바꾸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역대 정권에서의 데드 크로스는 대체로 레임덕의 전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데드 크로스 한 번으로 레임덕에 빠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처럼 지지율 반전에 성공한 경우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문 대통령의 지지율 교차는 주간별 조사의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렇더라도 집권 3년 차 진입에 앞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징후입니다. 하지만 지지율 하나로 정권 전체의 위기를 증폭시켜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지만 반전의 기회와 시간을 놓쳐버리고 데드크로스 현상이 고착화 된다면 진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데드크로스 탈출 노력입니다. 대통령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커졌고 이는 점차로 점차로 무능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타파해야만 대통령 지지도는 데드크로스를 탈출할 길이 열리게 됩니다. 주어진 반전의 기회와 시간을 제대로 잡고 활용해야 합니다.

국정관리의 한계를 드러낸 ‘내 사람 중심의 국정운영’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큰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합니다. 원로들의 안목과 지혜에 귀 기울이고 전략적 마인드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귀중한 인적 자산을 활용하고 귀를 더 크게 열어 국민의 지혜와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최근 자주 언급하는 뼈아픈 자성과 비상한 각오가 말성찬이 아닌 구체적 결실로 이어져야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겁쟁이는 용감한 사람을 망나니라고 하고 망나니는 용감한 사람을 겁쟁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용기를 내는 사람은 적절한 터닝 포인트가 기다립니다.

중용에는 “가난하고 천할 때는 가난하고 천한 그대로, 고난을 당할 때는 고난 그대로 행하면 근심이 없다. 허세 부리는 사람이 용기가 있거나, 용기 있는 사람이 허세부리는 일은 드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용기는 지혜로운 자가 가질 수 있는 무기입니다. 데드크로스를 무시하거나 무감각하거나 아니면 이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대통령 국정지지도에서 사용된 데드크로스가 앞으로는 ‘밴드웨건 효과’나 ‘언더독’과 같은 용어처럼 흔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데드가 아니라 반전의 효과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