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호 기념주화는?…기념주화 탄생의 놀라운 비밀

화폐-돈-money1970년 발행 ‘1호 기념주화’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
1호 기념주화 해외서 비밀리 제조…전량 해외서 생산·판매
기념주화가 발행된 뒤 정부에서 승인한 촌극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으로 발행한 화폐로 인해 더욱 친숙해진 기념주화. 나라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하게 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기념주화를 처음으로 만들었을까요.

시중에 통용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는 1970년 8월15일 발행된 ‘대한민국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념주화는 우리나라 1호 기념주화로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화폐전문가 조차도 ‘대한민국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는 태어난 절차상도 문제가 있거니와 역대 기념주화 통계에 넣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가 가진 독특한 배경 때문입니다.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는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서 생산되고 판매돼 정작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주화가 왜, 도대체 어떻게 해서 태어난 것일까요.

그런데 국민들이 모르는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의 발행은 대통령 1급 비밀수준으로 분류돼 한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다가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도 베일에 가려졌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 주화의 탄생배경을 보면 1969년 당시 주미대사로 근무하던 분이 순회대사로 유럽의 여러나라를 순회하던 중 ‘북한이 금은 주화를 만들려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리고 이를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합니다. 북한에 결코 지기를 싫어하고 경쟁심이 강했던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은 기념주화 생산을 전격 지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비밀리에 진행되게 됩니다.

당시 이 기념주화의 만드는 과정은 이랬습니다. 제조는 독일 주화업체가 맡았고, 판매는 이탈리아 회사가 대행했습니다. 또한 판매대금의 20%를 한국정부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해외에서만 판매됐습니다. 한국은행은 1970년 8월1일 기념주화 발행 공고를 했지만 한국은행 관계자들까지도 이 기념주화가 도대체 어디서 생산되는지 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주화가 먼저 발행되고 난 뒤에야 우리나라 정부승인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이 뒤따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970년 발행된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는 금화 6종(18만장), 은화 6종(100만장) 등 총 12종이 었습니다. 금화 액면가는 2만5000원, 은화는 1만원이었습니다. 이를 다시 환산해 보면 당시 쌀 한 가마니가 5000원 남짓 하던 때라 아마도 역대 기념주화 중 ‘가장 비싼’ 기념주화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이 기념주화보다 5년 뒤 정상적인 절차를 걸쳐 한국조폐공사가 발행한 광복 30주년 기념주화 가격은 겨우 100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웃지못할 사연을 안고 태어난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는 화폐도록에 올라있습니다. 화폐도록에서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는 12종 한 세트가 수 천만 원에 거래되고 있을 정도로 비쌉니다. 이렇게 고가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일부 수입상이 들여와 극히 희귀한데다 당시 액면가도 엄청났던 만큼 역대 기념주화 중에서는 아마도 최고로 가치가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화폐의 역사 속 이면에는 웃지못할 촌극도 있고 아이러니도 있습니다. 이런 사연을 안고 기념주화는 오늘도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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