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과 나이 경제학…세뱃돈 많이받는법 경제원리

설날 연휴가 되면 즐거운 일만 있는게 아닙니다. 스트레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뱃돈도 여간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얼마를 줘야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얼마가 적당할까요. 결혼을 안한 사람이라면 조카들 용돈을 얼마를 줘야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더불어 결혼한 사람의 경우 어르신들에게 얼마를 용돈으로 드려야할지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양가 어르신들 용돈과 아이들 세뱃돈까지 또다른 설날의 풍경입니다. 최근엔 경제사정까지 여의치 않아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다보니 여간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뱃돈은 언제 어떻게 유래가 된 것일까요. 아이들 용돈은 얼마나 어떻게 줘야 현명할까요.

설날-떡국-찹살떡-세뱃돈-용돈

설날의 또다른 고민거리 용돈
많은 사람들이 민족 최대 명절인 설에 즐거움과 고민을 동반하게 됩니다. 연휴 기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뜨지만 ‘조카들에게 얼마나 줘야 하나’, ‘나이에 따라 누구까지 줘야 하나’ 등 세뱃돈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적어도 고민, 많아도 고민되는 용돈. 더불어 결혼한 사람이라면 양가 어르신들에게 얼마를 드려야할지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설날의 원형은 당나라 역사책 구당서
중국 당나라(618∼907) 시절 역사책인 ‘구당서’에는 “신라는 매년 정월 원단(음력 1월1일)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친척과 관인들이 모인다”는 기록에서 설날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뱃돈은 세배로 주는 절값
세뱃돈은 ‘세뱃값으로 주는 돈’을 말합니다. 세배는 섣달그믐이나 정초에 웃어른께 인사로 하는 절을 말합니다. 세뱃돈은 한마디로 절값을 이릅니다. <세시잡영>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같은 조선 후기의 세시기에는 세뱃돈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조선 말기의 문신 최영년이 1925년에 낸 시집 <해동죽지>에 “옛 풍속에 설날 아침이면 어린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새 주머니를 차고 친척과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러면 어른들이 각각 돈을 주니 이를 ‘세배갑’이라 한다.”라는 말로 비로소 세배갑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세뱃돈 풍속은 192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등장합니다. 조선시대 반가의 부인들이 행했던 ‘문안비(問安婢)’라는 풍속에서도 세뱃돈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안비는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양반가 여자들이 정초가 되면 자신을 대신해 어린 여자 노비를 일가친척에게 인사 보내던 풍습을 말합니다.

문안을 받은 집에서는 꼭 여자 노비에게 세배상을 차려 대접하고 세뱃돈을 줬다고 합니다. 따라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꽤나 오래된 우리민족 고유의 풍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뱃돈은 중국에서 유래, 1960년대 과일로 나눠죠
세뱃돈은 중국에서 유래됐습니다. 세뱃돈은 1960년대 초반까지 세배에 대한 성의 표시로 돈 대신 곶감, 대추 등의 과일과 음식으로 나눠줬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 경제 성장과 함께 10원짜리 지폐를 주고받으면서 세뱃돈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는 문화가 정착됨과 동시에 액수도 증가해 부담도 배가 되고 있다.

세뱃돈 첫 등장은 1925년 해동죽지
세뱃돈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발간된 ‘해동죽지’라는 한문 시집으로, ‘옛날부터 세뱃값을 주는 풍속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세뱃돈의 역사는 일제시대 이전으로 올라간다고 볼 수 있지만, 언제부터 세뱃돈을 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뒤 1920~30년대엔 세뱃돈을 언급하는 신문 기사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당시 절값을 주지 마라, 세뱃돈은 나쁜 풍속이다, 조선 사람은 돈 욕심이 많다 등 세뱃돈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 일색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산업화 시기엔 아이들이 세뱃돈 받을 목적으로 여기저기 세배를 하러 다니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사회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음력설 쇠는 중국 ‘춘절(春節)’
중국은 음력 1월1일이 되면 ‘춘절’이라고 부르는 명절을 쇱니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중국에서는 춘절을 ‘과년(過年)’이라고 부르며 이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날 중국의 남쪽 지역에서는 떡국, 북쪽 지역에서는 만두를 먹습니다. 탕 안에는 원통 모양의 찹쌀떡 종류인 녠까오, 탕원(새알심을 넣은 맑은 국) 등을 끓여 먹습니다.

춘절 하면 폭죽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사람들은 폭죽의 크고 요란한 소리가 액운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긴다.

설날 풍습 붉은색 등인 공명등
붉은색 등인 공명등도 빠뜨릴 수 없는 설날문화입니다. 소원을 적은 등을 만들어 하늘로 올려보내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 전쟁터에서 사면초가의 신세가 됐을 때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날렸던 등에서 유래돼 공명등이라 불렸습니다.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복’ 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도 중국의 대표적인 설날 풍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몽골의  차강사르, 연장자에게 세뱃돈 드리는 풍습
몽골에서는 설날을 ‘차강사르’라고 부릅니다. 음력설을 보내지만, 태음력을 사용해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차강사르’는 하얀 달이라는 뜻입니다. 몽골에서 흰색은 순결과 풍부, 길상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몽골 사람들은 이날 한 해의 모든 행운이 좌우된다고 믿기에 1 2개월 전부터 정성들여 명절을 준비합니다.

음식은 양고기를 듬뿍 넣은 만두의 일종인 보츠를 먹습니다. 이날만은 집안의 큰 재산인 양을 잡아 넉넉하게 보츠를 만들어 가족과 손님에게 내놓습니다. 한국과 유사한 세배 문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몽골인들은 설날 아침이 되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집안의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합니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세배를 하는 사람이 연장자인 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드리는 점입니다. 세배할 때는 ‘하닥’이라는 흰 천을 들고 절 대신 뺨을 대며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세뱃돈 과연 얼마면 좋을까?
세뱃돈은 절값을 말합니다. 정성이 깃든 마음의 표시입니다. 금액이 결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일각에선 세뱃돈이 우리 전통문화가 아니라며 세뱃돈을 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세뱃돈 문화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송나라 때부터 정월 초하루, 즉 음력 1월 1일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나쁜 일을 물리치는 돈’ 이라는 의미로 덕담과 함께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줬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설에 새배를 하는 아이들에게 돈이 아닌 떡이나 과일을 줬습니다. 세뱃돈 문화가 정착된 것은 1900년대 들어서부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세뱃돈을 의미보다 물심위주로 해석해 버리면 본래 정신이 훼손되기 때문에 그 정신을 되살리는게 중요합니다. 오늘날 정신은 사라지고 물심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곰곰 되돌아볼 필요는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