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폐 고향은 어디?…화폐개혁 화폐전쟁 왜?

돈은 사람들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때 주고받는 지불 수단을 가리킵니다.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돈입니다. 그래서 돈은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쓰입니다. 돈은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말하자면 돈이나 화폐는 경제를 활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피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흔히 돈을 가리켜 경제의 혈액과 같다고 비유될 정도입니다.

사람 몸도 그렇습니다. 곳곳에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하듯이 돈도 원활하게 잘 유통이 되어야 경제가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두운 지하경제에 돈이 잠겨 잘 유통되지 않거나 특정 부유층에서 이를 독점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돈에도 역사가 있습니다. 사람만큼이나 오랫동안 경제를 지탱해온 혁혁한 공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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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화폐의 역사, 화폐의 역할은 뭘까
돈의 역할은 크게 가치 척도와 교환수단과 지불수단과 가치저장 수단으로 나뉩니다. 먼저 가치 척도 수단으로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준이 됩니다. 다음으로 교환 수단으로서 돈은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돈을 내고 책이나 옷을 사며, 놀이 공원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게 합니다.

다음으로 지불 수단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살 때, 또는 세금이나 벌금 등을 낼 때 사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돈으로 지불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치 저장 수단입니다. 돈이 없었을 때는 금이나 은 같은 귀한 물건이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많이 쓰였지만, 지금은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처럼 돈은 지폐나 동전에 표시된 금액만큼의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돈과 화폐의 역사, 우리나라 화폐의 고향은 부산
우리나라 돈을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돈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조될까요. 우리나라 화폐는 어떻게 만들까요. 우리 손으로 우리나라 돈이나 화폐를 처음으로 찍어낸 곳은 어디일까요. 정답은 부산입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시달리다 조국이 광복된 이후 한국조폐공사가 찍어낸 최초의 우리 지폐와 동전이 부산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조폐공사의 본적을엄밀히 따진다면 부산입니다.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의 태어난 고향이 부산이란 이야기입니다.

조폐공사 사서를 보면 조폐공사는 1952년 부산에서 첫 지폐를 생산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때가 1966년이었습니다. 당시 순수한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첫 번째 주화도 부산공장에서 생산됐습니다.

돈과 화폐의 역사, 6·25 당시 재무부 인쇄공장 부산에
한국전쟁 6·25 당시 1950년 12월 피란 정부는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여러 가지 업무를 봤습니다. 당시의 어지러운 전시경제를 추스러기 위해 당시 재무부 직할 인쇄공장을 부산에 짓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6·25 당시 정부는 즉시 임시공장 건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 해인 1951년 3월 동래구 명륜동 공장에서 첫 지폐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 당시 인쇄공장은 개인 기업체인 크레용공장을 빌려 사용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통화기관의 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어찌나 사정이 열악했던지 공장이 완공되기 전에는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찍은 우리 돈을 수입해 썼을 정도 였습니다.

한국조폐공사 1951년 10월 부산 명륜동에 들어서
전시 경제를 지탱하고 원활한 경제 흐름을 위해 돈을 찍어내는 주체인 한국조폐공사는 7개월 후인 1951년 10월 1일에야 명륜동에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 전시 정부가 전액 출자한 자본금 150만원과 직원 275명으로 첫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조폐공사 설립 1년 뒤인 1952년 10월에는 앞면에 이승만, 뒷면에 파고다 공원이 도안된 새로운 1000원권과 500원권을 한국조폐공사의 이름으로 첫 발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돈은 이듬해 원을 환으로 바꾸는 긴급통화조치가 단행되면서 단종되고 맙니다. 이후 1953년 7월 동래구 온천동 인쇄공장이 준공돼 우리 돈을 양산할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이후 이 공장은 1964년 대전으로 이전하기까지 우리나라 지폐의 생산기지가 됐습니다.

돈과 화폐의 역사, 1975년까지 국내 주화생산 기지
1953년 7월 온천동에 준공된 인쇄공장은 1964년 대전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인쇄공장이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는 압인기 2대를 설치한 주화 생산공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1966년 8월 한국조폐공사는 우리나라 화폐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순수한 우리기술로 10원, 5원, 1원 등 3종의 주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전까지 우리나라 주화는 미국 필라델피아 제조창에서 만들었습니다. 1975년 주화공장이 경산조폐창으로 옮겨가기까지 부산은 국내 주화생산을 전담했습니다.

돈과 화폐의 역사, 부산서 한국은행 조폐공사 정책 다져
1950년대 부산은 임시수도였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추스르고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했습니다. 그 중심에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는 부산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위한 통화정책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특히 1953년 2월 긴급통화조치를 단행, 한국조폐공사에서 찍어낸 한국은행권만을 유일한 국내통화로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반이 된 곳이 바로 부산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부산은 우리나라 화폐의 고향인 셈입니다.